1. 1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과 극강의 몰입도
단편 영화 <커브>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극강의 몰입도로 시청자들을 긴장시킨다. 이 영화는 호주의 팀 에간(Tim Egan) 감독이 16년도에 제작한 단편 공포 영화이다. 10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답게 별다른 스토리나 개연성은 없다. 궂은날 거친 파도가 일어 오르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한 여자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신이 곡선 낭떠러지에서 아슬아슬한 끝쪽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을 달싹였고 여자는 그 움직임 때문에 바닥으로 추락할 뻔하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곡선면을 잡아보지만 중력에 의해 점점 더 아래 방향으로 몸이 움직인다. 이미 두 손은 마찰 때문에 피부가 벗겨져 저 피로 범벅이 되어있지만 여자는 옷에 피 묻은 손을 닦아내며 벽면을 다잡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안간힘을 쓴다. 잠깐 숨을 고르는 사이 곡선 아래 칠흑같이 어두운 심연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지옥에 빠진 사람이나 짐승들이 지르는 비명 같기도 하고 칠판 긁는 소리 같기도 한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심지어 반대편 곡선에는 자신의 피 묻은 손이 만든 핏자국과 동일한 흔적이 보인다. 그 무시무시한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기 위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옷에 피 묻은 손을 다시 닦아냈는데 다시 거친 파도가 연출되며 먹구름이 보인다. 하늘도 무심하지 이 상황에 후드득 비까지 쏟아지게 됐다. 여자는 크게 절규한 뒤 비로 인한 미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방지하게 위해 목걸이를 손에 감아 마찰력으로 버텨본다. 이윽고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는 커브의 장면이 연출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2. 우울증의 반영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물이 아니라고 한다. 연출은 단순히 시멘트로 지어진 듯 보이는 커브와 공포에 질린 한 여자에 불과하지만 사실 우울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팀 에간(Tim Egan) 감독은 우울증을 앓고 있던 친구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친구의 경험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도 녹아냈다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어떠한 충격적인 사건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이별로 인해 우울한 감정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울한 감정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영화 <커브>에서 한 여자가 의식이 들고 나서 보니 자신이 커브의 위험한 가장자리 쪽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있던 것이 바로 후자에 해당한다. 갑작스레 깨어나고 보니 벼랑 끝에 높여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우울한 감정은 금방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영화 속의 여자도 아무리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손이 찢어지고 피가 나듯 여자는 우울증으로 고통받는다. 반대편의 피 묻은 손자국은 무력감을 상징한다. 그 장면은 베르테르 효과를 상징하는 것 같다. 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 일반인들도 자살이 급증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상황에 내리는 빗방울은 그녀를 더 힘들게 한다. 이 비는 끝까지 자살하게끔 행동하게 되는 안타까운 절망을 나타낸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목걸이를 이용해 마찰력으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는 일종의 노력으로 보인다. 커브의 밑바닥 심연의 지옥 같은 곳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3. 열린 결말
결말 부분의 빈 커브 장면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결말을 추측하게 한다. 그 여성이 커브를 탈출했을지 지옥 같은 밑바닥으로 추락했을지 관객들에게 상상에 맡겼다. 그 여성의 최후의 발악으로 우울증을 벗어났을지 아니면 반대편 피 묻은 손자국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됐을지를 말이다. 연출 구조상 여성이 비까지 오는 궂은 상황에서 탈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심연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줬다면 관객들은 큰 절망감에 빠졌을 것이다. 필자는 깔끔한 것을 선호해서 모호한 열린 결말을 좋아하는 않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열린 결말이라 다행이다고 느껴졌다. 빈 커브 장면에서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이 나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그 여자가 가까스로 탈출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고 부정적인 사람이라면 그 여자가 이미 낭떠러지로 떨어진 뒤 장면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상상에 불과하다. 감독이 의도한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희박한 희망이라도 있다면 충분히 아름다운 결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10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에 불과하지만 단편 영화 <커브>는 다양한 영화제에서 화려한 후보 이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SF, 공포, 스릴러 등 판타스틱 장르에 초점을 맞춘 영화제인 제49회 시체스 영화제에서 '오피셜 판타스틱 경쟁 단편' 부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휴양지 시체스에서 매년 10월에 개최하는 큰 영화제라 귀추가 주목받았다. 긴 러닝타임으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겠는 영화들이 많다. 짧은 시간이라도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을 하게끔 유도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야말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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